"큰 병원 가세요" 보낸지 5분 후 환자 심정지... 의사 책임 있을까

입력
2023.08.29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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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심 "위자료 2,000만 배상해야"
대법원 "불성실 진료 아냐" 뒤집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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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감기몸살 증상을 보이던 A(66)씨는 의원을 찾았다. 그는 의사 B씨에게 진료를 받고 영양제 수액을 맞던 중 갑자기 호흡곤란 증세를 호소했다. A씨가 천식 항생제를 추가로 투여받고도 가슴통증을 호소하자, 의사는 "택시를 타고 큰 병원에 가라"며 전원을 권고했다. 그러나 A씨는 의원을 나서진 5분도 안 돼 심정지로 쓰러졌고, 결국 2019년 12월 사망했다.

이 경우 의사 B씨는 A씨에 대해 제대로 치료하지 않은 배상 책임을 물어야 할까? A씨의 유족은 의사 B씨를 상대로 "진료비를 받아놓고도 제대로 의료행위를 하지 않았다"며 1억8,000여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유족 측은 "의사가 30분 동안 고혈압과 당뇨 등이 있는 환자에게 수액의 95% 이상을 주사하여 쇼크 및 심정지를 일으키게 했다"며 "활력징후(바이탈) 측정과 119 구급대 호출 등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급심 재판부는 A씨 유족 측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배상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의사의 진료행위와 사망 간의 인과관계는 인정하기 어렵지만, B씨가 치료에 전력을 다하지 않는 등 불성실한 진료를 한 건 맞기에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급심은 "호흡곤란이 발생했을 때 혈압과 맥박 등을 측정해야 했다"며 "의사는 환자가 무작정 병원 밖으로 나가는 걸 방치할 게 아니라, 즉시 탑승할 수 있는 택시를 부르거나 구급차를 호출하는 등 이송 과정에도 관여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1·2심은 B씨가 유족에게 배상할 위자료로 총 2,200여만 원을 책정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사망 과정에 의사의 책임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의사 B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는 취지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당시 환자가 주사 투여를 마친 후 전원 권고를 받고 병원에서 부축을 받아 걸어 나온 점 등을 고려하면, 의사가 눈에 띄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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