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분뇨, 생물다양성도 파괴... 사육구조 비슷한 한국서도 심각한 문제 될 것"

입력
2023.10.10 13:00
수정
2023.10.10 17:38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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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소정책장관, 질소저감정책 발표
"가축분뇨 속 질소가 생태계 위협"
찬반 갈등 팽팽... 시행 여부 주목
한국선 분뇨 처리도 여전히 난제

편집자주

전국 곳곳에서 '후각을 자극해 혐오감을 주는 냄새', 즉 악취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악취 민원은 무수히 쌓이는데 제대로 된 해법은 요원합니다. 한국일보는 16만 건에 달하는 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국내 실태 및 해외 선진 악취관리현장을 살펴보고, 전문가가 제시하는 출구전략까지 담은 기획 시리즈를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네덜란드 질소정책장관실이 자리한 덴하그(헤이그)시의 '농업, 자연 및 식품품질부' 청사. 2019년부터 질소저감 정책을 본격 추진 중인 네덜란드는 지난해 농업,자연 및 식품품질부 산하에 질소정책장관 직을 신설했다. 덴하그=윤현종 기자

네덜란드 질소정책장관실이 자리한 덴하그(헤이그)시의 '농업, 자연 및 식품품질부' 청사. 2019년부터 질소저감 정책을 본격 추진 중인 네덜란드는 지난해 농업,자연 및 식품품질부 산하에 질소정책장관 직을 신설했다. 덴하그=윤현종 기자

축산분뇨는 악취만 문제가 아니다. 분뇨 속 암모니아가 대기로 퍼지면 질소산화물과 결합해 초미세먼지를 생성한다. 그 자체로 토양이나 물에 침전하면 환경오염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네덜란드가 2018년부터 정책 기조로 삼은 순환농업의 핵심이 축산분뇨 발생량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이듬해 네덜란드 정부는 질소저감까지 본격화하기로 했다. 하루하루 악취 민원 처리에 급급한 한국과 달리 네덜란드는 생물다양성을 해치지 않는 축산의 미래 모습까지 고민하고 있다.

가축분뇨→과다질소→동식물위기, 대기오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암스테르담 무역관 등에 따르면 2019년 네덜란드 의회는 질소저감을 위한 긴급 법안을 통과시킨 후 지난해 농업, 자연 및 식품품질부 내에 질소정책장관 자리를 신설했다. 크리스티아네 판더발 초대 질소정책장관은 자국 자연보호구역 내 낙농시설을 대거 매입해 질소 배출을 막겠다고 지난해 6월 발표했다. 네덜란드에서 배출되는 질소의 46%가 농업 분야에서 암모니아(NH₃) 형태로 나와 퍼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전격적 결정이었다.

가축분뇨에서 질소가 과하게 나오면 토양과 물로 더 많이 흘러 들어간다. 질소 섭취를 반기는 식물이 번식에 유리해지면서 생태계를 장악하고, 과다한 질소를 못 견디는 식물은 심한 경우 멸종할 수밖에 없다. 자연의 먹이사슬 이치에 따라 그런 식물들에 의존해온 동물 역시 생존에 위기를 맞게 될 수 있다.

리산느 더로스 질소정책장관실 대변인은 지난달 8일(현지시간) 한국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네덜란드의 질소 배출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이는 축산업을 포함한 농업 전체, 나아가 생물다양성과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농업 분야에서 세계 수준의 연구 역량을 인정받는 바헤닝언대에서 만난 안드레 아닝크 축산환경 선임연구위원은 "네덜란드의 주요 질소 배출원인 축산농가 대부분이 자연보호구역과 밀접해 있다는 점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농가에서 배출되는 질소가 주변 식생에 직접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지난달 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바헤닝언시 바헤닝언대 정문. 이 학교는 농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역량을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바헤닝언=윤현종 기자

지난달 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바헤닝언시 바헤닝언대 정문. 이 학교는 농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역량을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바헤닝언=윤현종 기자


한국 잉여질소량, 이미 네덜란드보다 많아

네덜란드 정부와 현지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질소저감 정책은 속도감 있게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질소정책장관의 발표 이후 축사 폐쇄 압박에 몰린 네덜란드 농민들이 지난 3월 지방선거에서 농민시민운동당(BBB)에 몰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질소저감 정책 반대운동 과정에서 조직된 이 정당은 선거에서 압승했다. 기존 연립내각이 붕괴되면서 질소저감 정책 역시 흔들리고 있다.

지난달 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아이비케(왼쪽) 씨와 은행원 킴 씨가 암스테르담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질소저감 정책을 두고 농민들 사이에선 불만이 고조되고 있지만, 청년들은 향후 더 나은 환경을 담보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암스테르담=윤현종 기자

지난달 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아이비케(왼쪽) 씨와 은행원 킴 씨가 암스테르담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질소저감 정책을 두고 농민들 사이에선 불만이 고조되고 있지만, 청년들은 향후 더 나은 환경을 담보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암스테르담=윤현종 기자

그러나 현지에서 만난 일반 시민들, 특히 젊은층의 목소리는 농민들과 사뭇 달랐다. 위트레흐트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는 아이비케(24) 씨는 지난달 4일(현지시간) "기성세대는 질소저감 정책에 불만이 많지만, 젊은 세대는 그렇지 않다"며 "10~20년 뒤 더 깨끗한 환경에서 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정책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라이덴대 마리아나(21) 씨는 "그 정책으로 농산물 값이 오를 수 있지만, 부작용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은행에서 일하는 킴(22)씨도 "(일부 농민들의) 극단적인 행보에 동의하지 않는다. 질소 저감은 편향된 정책이 아니다"라고 했다.

아닝크 연구위원은 "(질소 증가는) 네덜란드와 비슷한 가축사육 구조를 가진 한국에서도 향후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한국의 토지 1헥타르 당 배출되는 잉여질소량은 222kg으로 네덜란드(131kg)보다 많다.주)1 우리 정부도 수년 전부터 농업 분야 분뇨관리제를 비롯한 관련 정책을 구상해왔지만, 눈에 띄는 진전이 없다. 질소 저감은커녕 기본적인 분뇨 처리도 여전히 쉽지 않다. 국립축산과학원 관계자는 "중앙정부 차원의 분뇨관리계획부터 수립할 필요가 있으나, 이해관계자 간 논의가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시범 실시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토로했다.


[인터랙티브] 전국 악취 지도 '우리동네 악취, 괜찮을까?'

※ 한국일보는 2018년 1월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전국 모든 기초지자체 및 세종시가 접수한 악취의심지역 민원 12만 6,689건과, 이 민원에 대응해 냄새의 정도를 공식적으로 실측한 데이터 3만 3,125건을 집계해 분석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내가 사는 곳의 쾌적함을 얼마나 책임지고 있는지 살펴보세요.

(위 URL이 열리지 않을 경우 링크를 복사하세요)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00420087210963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1 주)
네덜란드 농식품부 및 바헤닝언 대 작성 보고서, 2015 OECD회원국 집계 등 종합
암스테르담, 바헤닝언(네덜란드)= 윤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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