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휴전선으로 정찰기 투입... 北 도발에 9·19 합의 깬다

입력
2023.11.22 17:00
수정
2023.11.22 19:46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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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의결에 따라 오후 3시부터
"군사분계선 일대 공중 감시·정찰활동 복원"
효력 정지 직후 최전방에 정찰자산 투입
MDL 인근 포 사격 중지 해제도 막판 고심
258건 합의 중 첫 이행중단 사례로 기록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런던 숙소 호텔에서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 관련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영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런던 숙소 호텔에서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 관련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정부가 22일 오후 3시부터 9·19 남북군사합의 가운데 '비행금지구역' 설정 조항의 효력을 정지했다. 전날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맞대응 차원이다. 2018년 체결 이후 5년 만으로, 남측이 북한과의 합의이행을 먼저 중단하겠다고 밝힌 건 처음이다. 정부는 향후 북한의 도발 양상에 맞춰 9·19 합의 다른 조항으로 효력 정지 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다.

위성 발사 10시간 만에 첫 남북합의 선제 중단으로 맞불

영국 순방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9·19 합의 일부 조항에 대한 효력정지 안건을 재가했다. 북한이 정찰위성을 발사한 지 불과 10시간 만이다. 정부가 북한의 도발에 맞서 강경대응을 별렀다는 의미다.

효력 정지 기간은 "북한 안보 위협이 해소돼 남북한 간 신뢰가 정착될 때까지"로 설정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 남북 긴장이 고조된 점을 감안하면 9·19 합의를 되돌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정부는 남북대화가 단절된 상황을 감안, 우리 국민에게 효력 정지 결정을 알리는 것으로 대북 통보 절차를 갈음했다.

'눈에는 눈'...정찰위성 발사에 정찰력 복원으로 맞대응

구체적으로 정부가 효력을 정지한 부분은 9·19 합의 1조 3항이다. 군사분계선(MDL) 인근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남북 합의에 따라 MDL로부터 20㎞(서부)~40㎞(동부) 안에서는 전투기나 정찰기 등 고정익 항공기의 비행이 금지돼 있다. 무인기 또한 MDL 남쪽 10㎞(서부)~15㎞(동부)에서는 날아다닐 수 없다. 이로 인해 군 내부에서는 "우리 군의 대북 위협 표적을 식별하는 능력과 대응 태세가 크게 약화됐다"는 불만이 팽배했다.

이번 효력 정지로 무인기를 MDL 5㎞ 이남까지 운용할 수 있게 됐다. 휴전선 근처까지 무인기를 띄우는 셈이다. 실제 군 당국은 효력 정지 직후 무인기 등을 MDL 인근 상공으로 투입, 대북 정찰에 나섰다. 군 당국은 장사정포를 비롯해 북한이 숨겨둔 표적을 밀착 감시하고 전·후방 도발 징후를 실시간으로 포착해 대응하기 위해서는 근접 정찰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해왔다. 우리 군은 금강·백두(RC-800), 새매(RF-16) 정찰기를 대북 정찰 임무에 투입하고 있다.

국방부는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접경지역의 감시 정찰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북한은 군사정찰위성 발사로 우리에 대한 감시정찰 능력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며 "우리 군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북한의 도발 징후에 대한 공중 감시·정찰활동을 복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찰위성을 쏘아 올려 우리 군에 대한 감시 정찰 능력을 높이려는 북한의 시도에 맞선 '정당방위'라는 것이다. 그간 제한돼 있던 우리 정찰 능력을 시급히 강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일단 공중 제약부터 해소...도발 양상 따라 지상 해상까지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간 군사 합의 주요 내용. 그래픽=강준구 기자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 간 군사 합의 주요 내용. 그래픽=강준구 기자

정부는 이번 조치가 '최소한'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앞서 "연평도·백령도 등 서해 5도 주민의 안전, 그리고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적 조치"라고 밝혔다. 더불어 "아직 유효한 9·19군사합의 여타 조항에 대한 추가 조치는 북한의 향후 행동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중을 넘어 향후 해상과 육상과 관련한 합의에 대해서도 효력 정지를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국방부 관계자는 "합의에 따른 군사적 제약은 (모두) 없어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부연했다. 실제 NSC 논의 과정에서는 'MDL 인근 포 사격 및 훈련 금지'를 합의한 1조 2항의 효력도 함께 정지할 것인지를 두고 막판까지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깨진 상호주의...북한 추가 도발엔 어쩌나

한편에서는 이번 효력 정지가 북한의 추가 맞대응을 유발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당장 북한이 추가 위성 발사를 비롯한 고강도 도발에 나서거나 접경지역 일대에서 군사훈련과 무력시위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이번 합의 효력 정지는 '악수(惡手) 중의 악수'"라며 "군비경쟁 촉진과 함께 첨예한 군사대결 구도가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국방부는 "이러한 사태(효력 정지)를 초래한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 정권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어 "북한이 추가적인 도발을 감행한다면 우리 군은 굳건한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기반으로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즉각, 강력히, 끝까지 응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남상욱 기자
정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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