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쩍 늘어난 혼자 병원에 오는 암환자들

입력
2023.12.19 20:00
25면

편집자주

국민 10명 중 8명이 병원에서 사망하는 현실. 그러나 연명의료기술의 발달은 죽음 앞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린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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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림프종 진단을 받은 30대 남성이 예정된 치료 일정을 다 채우지 않고 자취를 감추었다. 거의 1년 후에 병세가 악화되어 나타나, 이번에도 몇 번 치료를 받고 증세가 호전되자 병원에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2년 후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다시 혼자 찾아왔다.

처음부터 제대로 치료를 받았으면 완치도 가능했을 텐데 불규칙하게 치료받다 병을 키워버린 상황이 아쉬워 그동안의 사정을 물어보았다. "제가 돈을 안 벌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해외 건설현장에서 장기간 일하다 통증을 견딜 수 없어 돌아왔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항암제 치료를 다시 시작했으나, 이번에는 더 이상 반응하지 않았고 찾아오는 가족조차 없이 쓸쓸히 사망하였다.

암 환자가 혼자 병원을 오는 일은 과거에는 드물었으나, 최근에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암이 말기에 접어들었다는 말을 환자에게 직접 하기가 어려워 "다음에는 가족이랑 꼭 함께 오세요"라고 하면 "같이 올 가족이 없다"라는 답변이 돌아올 때도 많다. 또, 환자 가족이 간병을 하지 않는 경우도 계속 늘고 있는 것을 병원에서 느끼고 있다.

1인 가구가 34.5%, 2인 가구까지 포함하면 63.3%인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부모와 자녀들로 구성된 가족의 개념은 더 이상 일반적이지 않다. 노인이 홀로 혹은 둘이 살고 있는 부모 세대, 적령기가 되어도 혼자 사는 자녀, 결혼하고도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증가하고 있다.

한 공공기관의 조사에서 30대 국민 중 39.5%가 평생 혼자 살다가 혼자 죽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힘든 점을 물어보면 대부분 몸이 아플 때라고 말하고, 만성 질환이 있는 환자라면 죽을 때 혼자일까봐 두렵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사회적 고립상태로 생활하던 사람이 자살, 병사 등으로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을 고독사라고 말하며, 우리나라에서도 2021년 3,378명이 보고되었다.

또 다른 유형의 외로운 죽음은 무연고사이다. 요양병원과 같은 의료기관 등에서 의료진의 도움을 받다가 사망하지만, 사망 후 장례 시점에 시신을 인도받을 사람이 없는 죽음이다. 사망 후 연고자에게 연락하였으나, 오랜 기간 연락을 끊고 있었거나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시신 포기 각서에 서명하고 장례를 지방자치단체에 의뢰하는 경우로 한 해에 5,244명의 무연고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우리보다 노령화가 빨리 진행된 일본을 살펴보면, 2022년에는 2만6,821명이 고독사로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2013년의 1만3,583명과 비교하여 약 2배 이상 증가한 수치이다. 이런 영향으로 이들의 유품을 정리해주는 '유품 정리인'이라는 새로운 직업군까지 생겼다. 과거에는 가족이 했을 일을 돈을 주고 남에게 맡기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저출산율, 노인 빈곤율, 자살률 모두 세계 1위 국가이다. 이 현상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아직도 원인 분석만 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가족이 아닌 개인 단위의 생활 패턴으로 바뀌었는데, 아직도 부모가 자식을 돌보고 장성한 자식이 늙은 부모를 봉양하는 전통적 '가족'의 틀을 전제로 논의를 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잊혀 가고 있는 가족의 가치를 되찾기 위해서는 자식이 부모에게 짐이 되지 않고, 부모도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사회 복지제도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내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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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대석서울대병원 내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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