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일본 항공기서 379명 모두 무사… '90초 룰'의 기적

입력
2024.01.03 22:00
수정
2024.01.03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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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네다공항 사고 피해 최소화 '기적'
사고 원인 조사..."주행 지시 어겼나"
교신기록에 해상청기 진입 허가 없어
"관제사 지시 잘못 들었을 가능성"

활주로 충돌 사고로 전소된 일본항공(JAL) 여객기가 3일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 활주로에 놓여 있다. 도쿄=AP 뉴시스

활주로 충돌 사고로 전소된 일본항공(JAL) 여객기가 3일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 활주로에 놓여 있다. 도쿄=AP 뉴시스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2일 발생한 항공기 충돌 사고와 화재에도 불구하고 인명 피해는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 특히 불에 탄 일본항공(JAL) 여객기 탑승객 379명이 모두 무사히 탈출한 과정이 '90초 룰의 기적'이라는 평가도 많이 나온다. 다만 사고 원인을 두고선 여객기와 충돌한 일본 해상보안청 항공기의 관제사 지시 불이행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탑승객 전원, 4~5분 만에 무사 탈출 '기적'

3일 일본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착륙 직후 충돌로 순식간에 불타오른 기체에서 400명에 가까운 승객과 승무원이 모두 무사히 탈출한 데 대해선 높이 평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영국 BBC는 "기체의 크기, 승객, 승무원 수를 감안하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두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다는 것은 기적적"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국토교통성도 기자회견에서 "통상 이런 충돌 사고는 화재가 발생할 때까지의 시간이 매우 짧다. 그사이에 무사히 전원이 탈출할 수 있었다는 것은 기내에서 유도가 제대로 됐다는 것"이란 의견을 밝혔다.

일본 언론은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항공기 '90초 룰'에 주목했다. 항공기 사고에 대비해 44인승 이상 비행기는 사고 발생 시 모든 승객이 90초 이내에 탈출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게 90초 룰이다.

이번 사고 당시 승객과 승무원 379명이 모두 빠져나오는 데는 4~5분 정도 걸렸고, 전원 탈출 후 10분도 지나지 않아 기체는 화염에 휩싸였다. 일본 언론들은 승무원들의 빠른 판단, 승객들의 질서 정연한 움직임이 대형 참사를 막았다고 분석했다.

앞서 2일 오후 4시 홋카이도 신치토세공항을 출발한 일본항공 516편이 오후 5시 47분 하네다공항에 착륙한 직후 해상보안청 하네다항공기지 소속 항공기와 활주로에서 충돌해 화재가 발생했다. 여객기에 타고 있던 승객과 승무원 등 총 379명은 모두 탈출에 성공했지만, 해상보안청 항공기에 타고 있던 6명 중 기장을 제외한 5명이 사망했다. 기장도 화상으로 중상을 입었다. 여객기 승객 중 17명은 타박상을 입었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호소해 의료기관에서 진찰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2일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 활주로에 착륙하던 일본항공(JAL) 여객기가 해상보안청 소속 항공기와 충돌한 뒤 불길에 휩싸여 있다. 도쿄= AP 뉴시스

2일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 활주로에 착륙하던 일본항공(JAL) 여객기가 해상보안청 소속 항공기와 충돌한 뒤 불길에 휩싸여 있다. 도쿄= AP 뉴시스


전문가 "관제사 지시 잘못 들었을 가능성"

충돌 사고 원인 조사도 이어지고 있다. 국토교통성이 현지 언론에 공개한 교신 기록에 따르면 공항 관제사는 먼저 일본항공 여객기에 착륙을 지시했고, 이후 해상보안청 항공기에 "활주로 정지 위치까지 주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해상보안청 항공기가 방향을 틀어 여객기가 착륙하던 활주로로 진입했고, 양측은 충돌했다. 국토교통성은 "교신 기록으로는 해상보안청 항공기에 대해 활주로 진입 허가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해상보안청 항공기가 관제사 지시와 다르게 활주로 전에서 멈추지 않고 더 앞까지 주행한 것이 사고 원인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일본 NHK에 따르면 일본항공도 "(조종사가) 관제사로부터 착륙 허가를 받고 이를 복창한 뒤 (활주로에) 진입, 착륙하는 조작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반면 이번 사고로 중상을 입은 해상보안청 항공기 기장은 "관제사로부터 이륙 허가를 받았다"며 전혀 다른 진술을 했다.

전 일본항공 기장이자 항공평론가인 고바야시 히로유키는 2일 아사히신문에 "일본항공 기체와 해상보안청 항공기 중 어느 한쪽이 관제사의 지시를 잘못 들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77년 대서양의 스페인령 테네리페섬 활주로에서 여객기가 충돌해 583명이 사망한 최악의 사고가 발생했는데, 당시도 안개가 짙게 끼어 활주로가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기장이 관제사의 지시를 잘못 알아들은 것이 원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일본 운수안전위원회는 항공 사고 조사관 6명을 하네다공항에 파견해 3일부터 본격적 조사를 시작했다. 프랑스 항공사고조사국도 가까운 시일 내 조사단을 일본에 파견할 예정이다. 사고 여객기를 제조한 에어버스도 "전문가를 일본에 파견해 기술적 측면에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사고 여파로 하네다공항에선 3일 오전에도 100여 편의 운항이 중지돼, 연말연시 연휴에 이동하던 귀성·귀경객이 큰 불편을 겪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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