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개, 고양이를 잡아먹은 1870년의 파리지앵

입력
2024.01.07 19:00
수정
2024.01.08 11:10
25면

그리고 동물원의 곰, 늑대, 코끼리로 요리한 파리 레스토랑

나르시스 샤유, '파리 포위전 당시의 쥐 장수', 1870년, 생드니 박물관, 프랑스 파리

나르시스 샤유, '파리 포위전 당시의 쥐 장수', 1870년, 생드니 박물관, 프랑스 파리

이 그림은 19세기 파리의 쥐 정육점에서 일하는 소년 푸주한을 묘사하고 있다. 털가죽이 벗겨진 쥐가 의자 등받이에 매달려 있고 그 아래엔 또 한 마리가 송곳에 꽂혀 있다. 의자 밑 덫에는 도살이 임박한 쥐들이 들어 있고, 바닥엔 쥐 털과 흥건한 피가 보인다. 양쪽 소매를 걷어 올리며 도축 작업을 준비하는 쥐 장수의 가죽 장갑 낀 왼손에는 예리한 칼이 단단히 쥐어져 있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프랑수아 나르시스 샤유(François Narcisse Chailou)는 당대 파리의 생활을 묘사한 장르화로 유명하다. '파리 포위전 당시의 쥐 장수'는 그의 대표작이다. 이 그림은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시기 파리지앵(Parisiens)의 비참했던 삶을 증언한다.

쥐 하면 중세 유럽 전역에 흑사병을 옮긴 벼룩의 숙주인 '검은쥐', 또는 하수구를 돌아다니는 병균 가득한 쥐가 떠오른다. 쥐고기를 입에 넣는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문명을 벗어난 야생의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쥐나 뱀을 잡아먹는 경우가 있다지만, 먹거리 천지인 현대 사회에서 쥐고기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우리다. 당시 파리 사람들은 왜 쥐고기를 먹었을까? 화려한 미식과 고급 와인의, 빛나는 음식문화로 자부심이 강한 파리에서 말이다.

그해 9월, 프로이센 군대가 파리를 포위하고 도시로 가는 식량 수송을 차단했다. 파리 시민들을 아사 직전까지 몰고 가 항복을 받아내려고 한 것이다.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식량이 바닥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고기, 신선한 야채, 버터, 우유, 치즈를 구할 수 없었다. 포위전이 계속되는 수개월 동안, 심각한 식량난에 봉착한 도시인들은 살기 위해 무엇이든 먹어야 했다. 처음엔, 저지방 단백질이 많이 함유된 말고기가 널리 소비되었다. 말고기는 국이나 수육 등 다양하게 조리되어 식탁에 올랐고, 말의 피도 버리지 않고 푸딩으로 만들어 먹었다.

하지만 말고기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파리 사람들은 다른 육류를 찾았다. 푸줏간 주인들은 개, 고양이, 쥐고기를 팔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것들을 사 먹었다. 별미로 여겨진 쥐는 고양이나 개보다 좀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되었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는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좋은 사료다. "지금 파리에는 고양이, 개, 쥐 정육점이 있는데, 만약 우리에게 말고기가 있다면 그런 동물을 먹지 않을 거야."

포위 기간 중 파리에 머물렀던 영국 정치인이자 저널리스트인 앙리 라부셰르(Henry Labouchère)는 파리지앵이 다른 품종의 개보다 푸들 고기를 선호한다는 기사를 포함하여, 그 당시의 특이한 육류 식단에 대해 쓴 잡지를 발행해 명성을 얻었다. 한때 한국의 개고기 식문화를 광신적으로 비판해 논란을 일으킨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는 불과 100여 년 전의 자국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이렇듯, 가축은커녕 길거리에 푸들까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궁핍한 4개월 반을 보낸 후, 결국 프랑스 정부는 1871년 1월 28일 프로이센에 항복했다.

작가 미상, '코끼리 도살', 1871년, 파리 박물관 컬렉션. 파리 포위전 당시 동물원 '자르댕 데 플랑트(Jardin des Plantes)'의 코끼리 도살 장면을 묘사한 석판화.

작가 미상, '코끼리 도살', 1871년, 파리 박물관 컬렉션. 파리 포위전 당시 동물원 '자르댕 데 플랑트(Jardin des Plantes)'의 코끼리 도살 장면을 묘사한 석판화.

이상한 식단은 개와 고양이, 쥐고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심지어 코끼리를 비롯한 동물원의 동물들까지 잡아먹었다. 당시 파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레스토랑 중 하나인 '부아쟁(Voisin)'은 1870년 크리스마스 메뉴로, 야채와 고기로 속을 채운 당나귀 머리, 코끼리 수프, 낙타구이, 캥거루 스튜, 매운 후추 소스로 조리된 곰갈비구이, 쥐를 곁들인 고양이 요리, 늑대 넓적다리살구이 등 이색적인 요리를 고객들에게 선보였다. 부아쟁은 파리의 부유층과 저명인사들이 드나드는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부아쟁의 수석 셰프 소롱(Alexandre Etienne Choron)은 그해 크리스마스 만찬을 준비할 충분한 식재료를 얻지 못하자, 동물원에서 고기를 조달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부아쟁 말고도 파리의 여러 식당이 동물원에서 평범치 않은 고기를 제공받았다.

이런 동물 식재료를 공급한 곳은 '자르댕 다클라마타시옹(Jardin d'acclimatation)'을 비롯한 파리의 동물원들이었다. 자르댕 다클라마타시옹은 캥거루, 곰, 호랑이, 낙타, 하마, 얼룩말을 포함한 다양한 이국적인 동물을 수용하여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총체적인 식량 부족으로, 동물원 측은 사육 동물들에게 먹이를 줄 수 없었고, 마침내 대부분 도축해 레스토랑의 식재료로 판매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동물들 중에는, 관람객들을 등에 태워주는 일을 하며 사랑을 듬뿍 받았던 카스토르와 폴룩스라는 한 쌍의 유명한 코끼리도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우리의 애정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동물 스타 '푸바오'를 도살한 셈이다. 튼튼한 가죽끈으로 단단히 묶인 코끼리들은 총알을 맞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준비된 양동이들은 그들의 피로 가득 채워졌다. 거대한 덩치 탓에 단번에 생명줄을 끊지 못했고, 그들이 죽음에 이르기까지는 긴 시간의 고통이 있었다.

부아쟁의 크리스마스 만찬 요리는 전쟁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극단적으로 몰아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이 이처럼 덧없다. 극한의 상황에 이르면 평소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이 현실이 된다. 배가 고프고 생명이 위협받기 전에는, 개인의 취향과 신념, 사회 관습, 종교에 따라 무엇을 먹고 안 먹을지, 혹은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동물 복지와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는, 개와 고양이 같은 소중한 반려동물과 동물원의 동물들을 잡아먹은 행위 또한 무척이나 야만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극심한 굶주림에 처한다면, 우리 역시 이런 종류의 색다른 고기를 취해야 할지도 모른다. '먹고사는' 문제만큼 절박하고 필사적인 것이 또 있을까.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대체텍스트
김선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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