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에서 키운 고구마가 집 앞까지...이커머스 성공 밑거름 된 '사이버 농장' 인기

입력
2024.02.07 12:00
16면

게임서 작물 키우면 '현실 배송'
중국 핀둬둬 '둬둬 과수원' 마케팅
농어민 직거래 유통 기반 급성장
올웨이즈 흥행 신화 주역 '올팜'
지난해 말 알리바바 시총 넘어서
바나나 등 20여 종 게임 보상 제공
이커머스 업계 '사이버 농장' 열풍
"소비자 호응 크지만 미래 전략 고민해야"

이커머스 플랫폼 올웨이즈의 올팜에서 파인애플이 재배되고 있다. 올웨이즈 캡쳐

이커머스 플랫폼 올웨이즈의 올팜에서 파인애플이 재배되고 있다. 올웨이즈 캡쳐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계에 때아닌 농사 열풍이 불고 있다. 양파, 고구마는 물론이고 아보카도나 바나나같은 외래종까지 그 대상도 다양하다. 다 자란 작물을 수확하면 현관 앞까지 내가 기른 작물을 배달해준다. 매일 같이 농산물이 수확되는 이 곳의 정체는 이커머스 플랫폼이 마련한 가상공간 속 '사이버 농장(Cyber Farm)'이다. 만보기 등으로 소비자에게 친숙해진 정보통신(IT) 업계의 게임화(Gamification) 전략이 농장 형태로 옮겨간 모양새다.



알리바바 제친 핀둬둬의 '둬둬 과수원'

중국의 이커머스 기업 핀둬둬. 핀둬둬 공식 사이트 캡쳐

중국의 이커머스 기업 핀둬둬. 핀둬둬 공식 사이트 캡쳐


지난해 말 중국 이커머스 업계에 파란이 일었다. 이커머스 앱 '테무'로 알려진 중국 기업 핀둬둬가 알리바바의 시가 총액을 넘어선 것. 회사 창립 후 10년이 채 되지 않은데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 이커머스 업계에서 이룬 성과인 만큼 큰 반향을 불렀다. 업계에서는 '둬둬 과수원'으로 대표되는 핀둬둬의 차별화 전략이 놀라운 성장 속도의 밑거름이 됐다고 평가한다.

핀둬둬는 사업 이전부터 알리바바, 징둥 등 기존 회사와 차별점을 뒀다. 핀둬둬는 지역 농어민과의 직거래를 통한 농수산물 유통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특히 게임에서 농작물을 수확하는 데 성공하면 진짜 과일을 집으로 배송해주는 둬둬 과수원이 관심을 모으면서 초기 이용자를 모으는데 성공했다. 특히 농수산물 유통에 주력한다는 회사의 정체성과도 들어맞으며 핀둬둬의 사이버 농장 전략은 마케팅 성공 사례로 남았다. 현재는 알리바바 그룹의 이커머스 플랫폼 '알리익스프레스'도 사이버 농장의 하나인 '리얼농장'을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사이버 농장으로 성장 동력 확보한 올웨이즈

이커머스 플랫폼 올웨이즈. 레브잇 제공

이커머스 플랫폼 올웨이즈. 레브잇 제공


레브잇이 운영하는 신생 이커머스 업체 올웨이즈도 지난해 괄목할 성장을 이뤘다. 데이터 분석 플랫폼 아이지에이웍스 마케팅클라우드에 따르면 2023년 12월 기준 올웨이즈 이용자 수는 316만여 명으로 같은 해 1월(106만) 대비 이용자 수가 세 배 가까이 늘었다. 레브잇의 빠른 성장 배경에는 둬둬 과수원을 본뜬 '올팜'의 성공이 있었다.

올팜은 이용자가 간단한 조작을 통해 바나나, 파인애플, 고구마 등 스무 종이 넘는 작물을 길러 수확할 수 있는 게임이다. 주기적으로 애플리케이션(앱)에 접속해 작물이 잘 자라게 물과 비료를 주면 된다. 친구를 초대해 '맞팜'(올팜 내에서 다른 이용자와 친구를 맺는 것)을 맺거나 이 업체가 판매 중인 상품을 구경하거나 사면 물과 비료를 추가로 얻을 수 있다. 좀 더 빨리 수확하려면 새 이용자를 불러오고 서비스를 꾸준히 이용해야 한다. 레브잇 관계자는 올웨이즈 이용자의 하루 평균 체류 시간이 40분이 넘는다고 했다. 국내 이커머스 업계 1위인 쿠팡의 하루 평균 체류 시간(6분 34초)의 여섯 배가 넘는다.

레브잇의 강재윤 대표는 7일 "내가 소중히 기른 작물을 수확한다는 경험과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고민하던 끝에 올팜을 내놓을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이용자에게 더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찾겠다"고 말했다.



올팜 이용자들이 모인 커뮤니티. 네이버 카페 캡쳐

올팜 이용자들이 모인 커뮤니티. 네이버 카페 캡쳐


이용자 반응도 뜨겁다. 올팜을 경험해 본 이들 스스로 네이버 카페와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등 자체 커뮤니티를 꾸렸다. 이 곳에서 4만 명이 넘는 이들이 서로의 작물을 자랑하고 새로운 맞팜 친구를 찾는 장소로 삼고 있다. 이전에도 미니게임을 통해 이용자에게 소소한 혜택을 주는 '앱테크'(애플리케이션+재테크) 사례는 많았지만 앱 자체가 아닌 내부 미니 게임만을 위한 커뮤니티가 만들어진 것은 이례적이다.

대다수 이용자들도 주변 지인의 추천을 통해 게임을 시작했다. 세 차례의 수확을 마치고 최근 파인애플 농사를 시작한 권모(42)씨는 몇 달 전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올팜을 알게 됐다. 그는 "이런 종류의 게임은 처음이지만 성취감도 있고 모으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전했다.



올팜에서 직접 수확해 배송받은 고구마. 석연우씨 제공

올팜에서 직접 수확해 배송받은 고구마. 석연우씨 제공


직장인 석연우(26)씨도 직장 동료의 추천으로 게임을 시작해 고구마를 수확했다. 석씨는 물과 비료를 얻으려 생수를 구매했으며 "오랜 시간 동안 온라인에서 기른 작물을 실제로 받아볼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고 말했다. 다만 친구 수가 적으면 수확까지 너무 오래 걸리는 점은 아쉬웠다고 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커뮤니티까지 만들었다면 온라인에서 한 경험이 오프라인의 보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앱 보상이 아닌 사회적 인정 욕구를 채운다면 소비자의 몰입감과 참여도가 증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세가 된 사이버 농장, 미래 전략도 고민해야

사이버 농장 서비스 '공팜'을 출시한 공구마켓. 공구마켓 제공

사이버 농장 서비스 '공팜'을 출시한 공구마켓. 공구마켓 제공


올팜의 성공과 함께 사이버 농장은 이커머스 업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경쟁 업체들도 올팜을 닮은 서비스를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공동구매 플랫폼 공구마켓은 지난해 6월 '공팜'을 선보였다. 당근, 토마토 등 작물을 길러 수확하면 '교환권'을 얻을 수 있다. 이를 일정 개수 이상 모으면 실제 작물을 받아볼 수 있다. 화분 모양새를 한 올팜과 달리 밭 형태를 띠고 있어 농장과 좀 더 닮았다는 것이 특징이다.



마켓컬리의 마이컬리팜에서 양파가 자라고 있다. 마켓컬리 앱 캡쳐

마켓컬리의 마이컬리팜에서 양파가 자라고 있다. 마켓컬리 앱 캡쳐


마켓컬리도 지난해 8월 '마이컬리팜' 서비스를 출시하며 사이버 농장 열풍에 합류했다. 가상의 화분에서 작물을 기르는 것은 올팜과 비슷하지만 작물을 여러 번 수확해 실제 작물과 바꾼다는 점에선 공팜과 더 유사하다. 마켓컬리 상품과 직접 연계도 비교적 적은 편이다.

마켓컬리 관계자는 이 같은 방식을 택한 이유를 "수확의 결실을 받게 되는 기쁨을 보다 쉽고 빠르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특히 비이용자 대비 게임 이용자의 앱 방문 횟수가 네 배 이상 많고 10만 명 이상이 작물 교환에 성공했을 만큼 호응도 뜨겁다고 강조했다.

양파, 당근 등 기존 작물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업체도 눈길을 끌었다. 11번가는 지난해 11월 신규 서비스인 '11클로버'를 공개했다. 11개의 클로버를 모두 기르면 물티슈, 명란김, 구운 계란 등 판매 중인 상품을 무료로 받는다. 한 달 정도로 기획된 이벤트였지만 이용자 인기에 힘입어 3월까지 기간이 연장됐다. 산지직송 플랫폼 팔도감은 게임 내에서 송아지를 기르는 데 성공하면 한우 차돌박이 제품을 제공하는 '매일목장' 서비스를 내놨다.

이재영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이버 농장의 인기를 두고 "정성스럽게 노력을 해서 상품을 받는 과정과 긴 시간을 거쳐 농산물과 동물을 길러내는 과정은 서로 닮았다"며 "소비자들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상징 안에서 보다 강한 몰입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농장과 농산물이라는 '상징'을 통해 소비자가 보상을 얻는 과정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게임화 전략의 효과가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이 교수는 업체들을 향해 "게이미피케이션 마케팅도 다양한 활로를 찾지만 그 효과가 사그라들면 식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좁은 의미의 게임으로 만드는 것에만 시간과 노력을 빼앗기지 말고 새로운 게임의 틀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업계에서 게임화 경쟁이 과열되면 실패한 수익 모델로 남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보상 규모와 이용자 집단이 늘어나며 증가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창경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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