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이 우리 집 아는데... 한발 늦는 피해자 보금자리 지원

입력
2024.02.06 14:30
수정
2024.02.06 16:4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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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피해자: ⑥주거지원 대책 한계]
정부 지원 대상 확대되고는 있지만
'최소 보증금'조차 없어 좌절되기도
보호시설 이용 요건도 완화할 필요

편집자주

집에서 범죄를 당하거나 가해자가 내 집 주소를 안다면. 몸서리치는 그 상황에서, 더 이상 집을 '보금자리'라 부를 수 있을까요? 집은 평온과 휴식의 공간이어야 마땅하지만, 일부 범죄 피해자들에겐 그저 '빨리 탈출해야 할 지옥'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피해자들을 위해 정부가 '주거지원 대책'을 마련해 두고 있는데요. 그 지원을 현실적으로 이용하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어떤 걸림돌과 한계 때문에 대책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지를 살펴봤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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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피해자의 신변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신속한 일상 복귀도 도모하겠습니다."

범죄 피해자를 위한 주거지원 대상에 '보복범죄 피해자'를 포함한 2018년, 정부는 대책의 의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주택이 범죄 현장이 됐거나 가해자가 피해자 주소지를 아는 경우, 피해자 트라우마 극복과 2차 가해 방지를 위해 포괄적 이주 정책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보복범죄 피해자가 주거지원 제도 안으로 들어온 지 6년이 지났지만, 그러나 현장에선 여전히 "사각지대가 계속된다"는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지원 대상자 적합 판정을 받기까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고, 임시 거주시설의 여러 제한 탓에 마땅한 대피처를 찾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적지 않다.

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까지 '범죄피해자 주거 지원 제도'로 주택을 계약한 가구는 총 289가구다. 법무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협약을 맺어, 2010년부터 범죄 피해자를 우선 주거 지원 대상에 포함하고, 국민임대 및 매입∙전세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연평균 약 20명이 혜택을 받는 셈이지만, 현장 관계자들 전언에 따르면 실제론 접수 문턱에서부터 좌절하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한다. 집세 때문이다. 가장 저렴한 편인 전세임대에 당첨된다고 해도 수도권 지원한도액(보증금 9,000만 원) 기준 보증금 450만 원과 월세가 필요한데, 범죄 피해자를 위한 정부 지원엔 '이사비'만 있을 뿐 '주거비'는 포함돼 있지 않다.

신청 절차도 쉽지 않다. 우선 범죄 피해자 자격을 인정받기 위해 △범죄 발생 사실 증명 자료 △신체∙재산상 피해 증명 서류 △소득확인 증명서 등을 관할 검찰청 심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사건 초기 수사∙재판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 피해자들로서는 퍽 부담스러운 과정이다. 가정폭력 피해자 고미연(가명∙51)씨도 "주민센터와 병원, 수사기관을 오가며 온갖 서류를 떼느라 진이 다 빠질 정도"라고 당시를 돌아봤다.

이후 LH에 최종 입주자로 선정되기까지도 최소 한두 달이 소요된다. 적당한 물건이 없어 피해자의 물색 기간이 길어지는 일도 적지 않다. 그렇게 보금자리가 구해지는 동안 임시로 안전하게 머물 보호시설이 필요한데, 이쪽에선 또 거주 가능 기간이 짧다는 문제가 있다. 법무부 스마일센터(범죄피해 트라우마 지원 기관)는 1개월 내 단기 입소가 원칙이고, 경찰청 임시숙소는 10일, 검찰청 안전가옥은 재판 종결까지 이용할 수 있다.

여성가족부가 성범죄 피해자와 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해 운영하는 2년 이상 장기 거주시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성폭력피해자 보호시설은 사실상 여성을 위한 쉼터라, 가족과 동반입소가 어렵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이용할 수 있는 가족보호시설에 엄마와 10세 이상 남자아이가 함께 들어올 수 있게 된 것도 2011년부터다.

결국 범죄로 갈 곳 잃은 피해자들은 ①보금자리 상실 ②트라우마 ③보복범죄 두려움이라는 3중고에 처하는 셈이다. 수도권의 한 범죄피해자지원센터 관계자는 "피해자의 사후 관리 차원에서 적극적인 주거 정책은 필수"라면서 "범죄 유형과 무관하게 유동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보호시설 확충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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