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 싸움, 화투

입력
2024.02.15 04:30
27면

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화투는 누구와 어디에서 치느냐가 중요하다. 놀이와 도박은 한 끗 차이니까. 도박이 되는 순간 인생의 낭떠러지를 경험할 수 있다.

화투는 누구와 어디에서 치느냐가 중요하다. 놀이와 도박은 한 끗 차이니까. 도박이 되는 순간 인생의 낭떠러지를 경험할 수 있다.


꽃들이 싸운다. 매화, 벚꽃, 난초, 모란, 국화 등 하나같이 쟁쟁하다. 그 치열함 속엔 격언(?)들이 넘실댄다. ‘비풍초똥팔삼’. 살다 보면 뭔가를 포기해야 할 때가 온다. 그럴 땐 버리는 것도 우선순위를 잘 정하라. ‘광 하나는 가지고 살아라.’ 누구라도 한 번쯤 실패의 쓴맛을 본다. 그럴 때일수록 마지막에 내놓을 것 하나는 꼭 쥐고 있어라. ‘낙장불입’. 한 번의 실수가 인생에 어마어마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하라.

마흔여덟 장으로 된 놀이용 꽃그림 딱지, 화투 이야기다. 설 연휴 내내 고향 마을회관은 시끌벅적했을 게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에 손주까지 자랑하러 모인 어르신들이 마당에선 윷놀이를, 방 안에선 화투를 즐겼을 테니까. 화투는 방식이 복잡해 셈이 어두운 나는 끼어들 엄두도 못 낸다.

월별로 그림을 맞추는 ‘민화투’가 기본이다. 이것 빼면 놀이 수준이 확 높아진다. 다섯 장의 패 가운데 세 장으로 열 또는 스물을 만들고, 남은 두 장으로 땡 잡기를 하거나 끗수를 맞춰 많은 쪽이 이기는 건 ‘짓고땡’이다. 600점이 될 때까지 겨루는 ‘육백’, 두 장의 화투장이 가장 높은 끗수일 때 판돈을 가져가는 ‘섰다’ 등은 설명을 들어도 막상 판에 끼어들면 헤맨다. 민속놀이는 아니지만 워낙 즐기는 이가 많아 민화투, 짓고땡, 육백, 섰다, 고스톱 등은 표준어에도 올랐다.

‘화토’는 경상도 강원도 전라도 제주도 사투리다. ‘꽃들의 싸움’을 한자어로 표현한 화투(花鬪)만 표준어다. 따라서 화투판에서 누군가 슬쩍 화투짝 한두 장을 숨기거나, 치던 순서가 뒤바뀌어 판이 틀어졌을 땐 ‘파토’가 아니라 파투가 난 것이다.

‘한 끗 차이’는 화투에서 나온 표현이다. ‘끗’은 화투의 점수를 나타내는 단위다. 화투판이 끝나면 서로 점수를 따지는데, 딱 한 끗으로 승부가 갈렸을 때를 상상해 보시라. 너무나도 아슬아슬해 오금이 저릴지도 모르겠다. 그런 까닭에 ‘아주 작은 차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간혹 ‘한 끝 차이’라는 잘못된 말이 눈에 띄는데, 화투판을 생각한다면 더 이상 쓰지 않을 것 같다.

‘끗발 세다’라는 표현도 화투판에서 생겨났다. 좋은 끗수가 이어지는 게 끗발이다. 끗발 역시 뜻이 확장돼 (속되게) 당당한 권세나 기세를 말한다.

심심해서, 혹은 남루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도박판에 끼는 순간 인생의 낭떠러지를 경험할 수 있다. 화투는 장소와 상대를 잘 가려서 해야 한다. 놀이와 도박은 딱 한 끗 차이니까.





노경아 교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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