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의 강' 넘나든 검사와 변호인... 한동훈이 유영하를 공천하기까지

입력
2024.03.10 12:0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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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국정농단 보고서: ⑤바뀐 지형도]

편집자주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헌법재판소의 역사적 선고가 나온 지 7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국정농단'이라는 이름 아래 이뤄진 수사와 재판은 모두 마무리 됐습니다. 국정농단은 대한민국 정치지형을 재편했을 뿐 아니라, 법원과 검찰 조직도 많이 변화시켰습니다. 국정농단이 이 나라에 남긴 유산과 숙제는 무엇인지, 이 사태가 세상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찬찬히 돌아보기 위해, 한국일보는 법조인 50명을 상대로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수사·재판 과정에 관여했거나, 사건을 가까이서 살펴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증언과 각종 통계, 기록 등을 바탕으로 '2,555일(7년)의 기록'을 다시 정리해 보려 합니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2016년 11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가 서울고검 앞에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2016년 11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가 서울고검 앞에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특검 수사는 황당한 소설입니다. 객관적 증거(를 기반으로 한 게) 아닌 목표를 정해놓고 진행한 수사입니다."

(2017년 3월 6일 유영하 변호사)

유영하 변호사가 1월 22일 제22대 국회의원선거 대구 달서갑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유영하 변호사가 1월 22일 제22대 국회의원선거 대구 달서갑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총선 후보로) 단수 추천한 곳이 있습니다. 대구 달서갑. 유영하!"

(2024년 3월 5일 정영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

'유영하'가 등장하는 두 장면 사이엔 정확히 7년의 간극이 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법률 참모가 유영하 변호사였다. 당시 유 변호사는 박영수(특별검사)·윤석열(수사팀장)·한동훈(파견검사)이 주축이 된 특검팀 수사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태생부터 위헌" "짜 맞추기" "소설" 등 매운 발언이 이어졌다.

윤석열·한동훈과 가장 먼 대척점에 서 있던 유영하. 두 사람과 결코 화해라는 걸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유영하가, 한동훈이 대표를 맡은 여당의 총선 후보로 최근 결정됐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이었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법원 판결을 아예 부정했던 도태우 변호사가 대구에서 국민의힘 공천을 받았다. 도 변호사가 꺾은 상대 예비후보는, 다름 아닌 7년 전 박 전 대통령 수사라인에 있던 노승권 전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이 청와대에서 열리는 임명장 수여식 전 차담회에 참석,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이 청와대에서 열리는 임명장 수여식 전 차담회에 참석,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탄핵의 강을 건넌 사람들

이 기막힌 반전, 꼬임, 부조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탄핵의 강'은 처음엔 적과 동지를 명확하게 갈랐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전선은 희미해지고 그 강을 이리저리 넘나드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로 만났고 동지는 다시 적으로 돌아섰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박 전 대통령, 박 전 대통령의 자택을 여러 차례 찾은 윤 대통령, 유 변호사를 공천한 국민의힘 사례는 정치가 역시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7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윤 대통령과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중용된 검사들이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탄압받던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파격 승진했고, 한 위원장은 그 검찰청의 특별수사 책임자(3차장)로 발탁됐다. 두 사람은 '박근혜 유죄'에 큰 공을 세웠고 ‘다스 주인은 이명박'이라는 걸 밝혔다.

그래서 두 사람은 자연히 더불어민주당의 비호를, 자유한국당(옛 국민의힘)의 공격을 받았다. 장제원 의원은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장모 관련 의혹을 제기하는 등 ‘윤석열 저격수’ 역할을 자임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대구 달성군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에서 박 전 대통령을 만나 산책을 하며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7일 대구 달성군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에서 박 전 대통령을 만나 산책을 하며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조국의 강에 다다르자...

하지만 '탄핵의 강'을 지나 ‘조국의 강’에 다다르자 아군과 적군이 싹 뒤바뀌었다. 윤 대통령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를 강행하자, '가장 잘 드는 두 칼'은 '가장 말 안 듣는 골칫거리' 취급을 받았다. 윤 대통령을 “형” “의로운 검사”라고 추켜세웠던 박범계 의원은 국정감사장에서 “자세 똑바로 하라”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적이 친구가 됐다. 검찰을 뛰쳐나간 윤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명맥을 이은 당에 들어가 대통령이 됐고, 장제원 의원은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으로 탈바꿈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식에 박 전 대통령을 초대했고, 이후에도 그의 자택을 찾았다. 자신이 구속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사면하며 은전을 베풀었다.

국정농단은 엄연히 존재했던 '부정한 행위'였고, 기소된 관련자 88%가 유죄를 받았던 '조직적 범죄행위'였다. 여기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달라지진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탄핵의 강을 사이에 두고 빈번하게 일어났던 △도강 △귀순 △화해 △재반목으로 인해, 7년이 지난 지금은 국정농단에 대한 사법적 평가마저 정치적 상황에 휘둘리는 결과를 맞게 됐다.

한국일보의 법조인 50인 인터뷰에 응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정치적 상황이 사법 판단을 침해한 이 상황에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정치에서는 정무적 판단이나 국민의 요청이라는 말로 사분오열하고, 합종연횡하는 것이 다반사인 것은 인정한다”라면서 “그러나 국정농단에서마저 사법의 영역에 정치의 영향이 스며든 점은 매우 안타깝다"고 씁쓸해했다.

안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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