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2.5억, 8번 공고'에도 지원자 0... 의사 품귀 '지방의료원' 대책이 없다

입력
2024.03.28 04: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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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지방의료원 결원율, 5년 새 2배↑
억대 연봉에 복지혜택에도 관심은 無
증원 몰아줘도 지방 정주 유인책 없어
공공의대 의무복무 등 세부 대책 필요

강원 영월의료원의 신경과 전문의 채용 공고. 영월의료원 홈페이지 캡처

강원 영월의료원의 신경과 전문의 채용 공고. 영월의료원 홈페이지 캡처

인구가 3만7,000명 남짓한 강원 영월군에는 의사가 드물다. 도가 운영하는 영월의료원이 지난해 11월부터 무려 8차례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채용 공고를 냈지만, 지원자는 '0'. 연봉 2억5,000만 원을 준다 해도 관심조차 갖는 의사가 없다. 의료원은 27일 9번째 채용 공지를 올렸으나, 지원자가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신경과도 2년째 채용 공고 중이다. 의료원 관계자는 "환자들이 전문의 진료를 받지 못해 인근 제천이나 원주까지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한 달이 훌쩍 넘은 의사 집단행동 사태는 우리 의료계가 처한 여러 어두운 현실을 드러냈다. 취약한 '공공의료'도 그중 하나다. 아무리 수술, 진료가 미뤄져도 수도권 공공병원에는 환자가 찾지 않아 운영에 위기를 겪고, 반대로 격오지 지방의료원엔 파격 연봉에 각종 복지혜택을 제공해도 의사가 없어 아우성이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며 지방공공의료 확대도 공언했지만, 지금의 대책 수준으론 의사들의 지방 기피를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진단이 많다.

4억 넘긴 지방의료원 의사 연봉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35곳 지방의료원 의사 결원율은 2018년 7.6%(정원 1,037명·결원 79명)에서 2023년 13.4%(정원 1,422명·결원 191명)로 늘었다. 5년 새 2배 넘게 증가하면서 지역 진료 공백은 더 심각해졌다. 성남의료원의 결원율은 전체 정원의 절반에 육박(45.5%)했고, 대구의료원(28.1%), 군산의료원(26.1%)도 평균치를 훨씬 웃돌았다.

의정갈등을 떠나 지방의료원들의 의사 구하기는 여전히 하늘의 별따기다. 속초의료원은 지난달부터 연봉 2억2,000만 원을 앞세워 임상과 전문의를 채용하고 있으나, 지원자가 없어 4번째 재공고를 올렸다. 강릉의료원 역시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전무해 운영이 중단됐고, 울릉의료원은 2년 동안 연봉 3억 원 조건으로 9차례 공고 끝에 겨우 의사를 채용했다. 올해 7월 정식 운영에 들어가는 충북 단양의료원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연봉으로 4억2,240만 원을 책정했다. 관사와 별장 제공은 덤이다.

지난해 2월 강원 속초의료원 응급의료센터 입구에 의료진 공백으로 응급실을 단축 운영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속초=뉴스1

지난해 2월 강원 속초의료원 응급의료센터 입구에 의료진 공백으로 응급실을 단축 운영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속초=뉴스1

의료원과 함께 지역 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는 보건소 역시 인력난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전북 정읍시는 일반임기제 지방의무사무관 진료의사(의무 5급)를 채용하기 위해 5번째 재공고를 냈다. 정읍시 관계자는 "진료수당을 다 합치면 연봉이 최소 8,000만 원은 되지만, 일반 의사와 비교가 안 돼 오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고연봉을 제시하는 지자체는 여력이라도 있다. 예산이 쪼들리는 자치단체는 파견 조건을 내걸기도 어렵다. 경북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매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지자체 사정을 감안하면 선뜻 억대 연봉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여기에 공중보건의들마저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차출되면서 일부 지역에선 의사 품귀 현상이 더 심해졌다.

"단순 증원으론 지방 기피 해소 역부족"

27일 서울 강서구의 한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간호사가 환자를 돌보고 있다. 뉴시스

27일 서울 강서구의 한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간호사가 환자를 돌보고 있다. 뉴시스

정부는 의대 증원 2,000명을 대부분 비(非)수도권에 배정해 지역 필수의료 문제 해결에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세부 대책으로 의사 지역근무 활성화를 위해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도입 계획도 내놨다. 하지만 현장에선 지역필수의사제가 이미 시행 중인 '공중보건 장학제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지자체가 의대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의사면허를 취득한 뒤 일정 기간 지방의료원에서 근무하도록 한 제도인데, 최근 5년 동안 신청자는 단 52명에 불과했다.

단순히 의대생 몰아주기로는 지방의 의사 인력난을 해소할 수 없다는 뜻이다. 관건은 숫자보다 늘어난 의사들을 증원 목적에 맞게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하세가와 사오리 인하대 의대 의료인문학교실 전임연구원은 "일본은 국·공립의대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일정 기간 지역에서 의무복무하는 제도를 도입했다"며 "도시냐 농촌이냐를 떠나 의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정부가 답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자문위원장도 "필수의료 개선이 목표라면 증원 인력을 공공의사나 지역의사로 양성하는 로드맵도 밝혔어야 했다"면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대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재현 기자
김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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