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난 농민 잠재우려"… 선거 앞둔 유럽, 환경 규제 대폭 완화

입력
2024.03.27 15:40
수정
2024.03.27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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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EU 농업장관 'CAP' 개정안 승인
농민 시위 여파... "농민 우려 해소"

26일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 도심의 한 거리에서 타이어가 불길에 휩싸여 있다. 농민 시위대가 EU 환경 규제 등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자 거리에 화재를 일으킨 것이다. 브뤼셀=AFP 연합뉴스

26일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 도심의 한 거리에서 타이어가 불길에 휩싸여 있다. 농민 시위대가 EU 환경 규제 등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자 거리에 화재를 일으킨 것이다. 브뤼셀=AFP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농가에 적용했던 환경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환경 보호를 위해 전체 경작지 4%를 휴경지로 남겨둬야 한다'는 내용의 휴경 의무 조항 폐지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결정은 다가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 전 성난 농심(農心)을 누그러뜨려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유럽 농민들은 올해 초부터 EU의 과도한 규제 등에 반발하며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여왔다.

EU, 속전속결 규제 완화

26일(현지시간) 유럽 전문 언론 유락티브 등에 따르면,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27개 회원국 농업장관 회의에서 EU 행정부인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공동농업정책'(CAP) 개정안이 승인됐다.

CAP는 농업 정책 방향성을 담은 법적 가이드라인으로 농가가 직불금을 받기 위해 지켜야 하는 요건을 명시하고 있다. 2021년 개정된 CAP(2023~2027년 적용)는 '친환경 농업'에 방점을 찍고 있는데, 이 중 '휴경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직불금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조항에 유럽 농가의 반발이 심했다.

이에 EU 집행위는 새로 마련한 개정안에서 휴경 의무 조항을 폐지하고, 대신 자발적으로 휴경을 실시하는 농가에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는 내용을 도입했다. '경작지 10㏊(10만㎡) 미만 소규모 농가는 CAP상 명시된 환경 기준을 준수하지 않아도 되며 불이익 처분에서 제외된다'는 내용도 담겼다.

EU 상반기 의장국인 벨기에의 다비드 클라린발 농업장관은 "우리는 농가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신속히 조처했다"고 밝혔다. 이날 합의는 집행위 개정안 발표 11일 만에 이뤄졌는데, 이는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다. 개정안은 다음 달 유럽의회 본회의 표결을 거쳐 시행이 확정된다.

26일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의 거리에서 농민 시위가 열리고 있다. 브뤼셀=EPA 연합뉴스

26일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의 거리에서 농민 시위가 열리고 있다. 브뤼셀=EPA 연합뉴스


여전한 불만... '환경 정책 후퇴' 비판도

다만 이번 조치가 성난 농심을 완전히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올해 초부터 'EU 환경 규제 폐지·완화' '값싼 우크라이나 농산물 수입 금지·제한' 등을 요구하는 농민 시위가 프랑스 독일 등 많은 국가에서 일어나자 EU는 관련 조치를 속속 도입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농가의 경제적 어려움을 완화하기에는 미진하다고 보는 농민들이 적지 않다. 농업장관 회의가 열린 이날도 브뤼셀 EU 본부 주변에서는 트랙터 약 300대를 동원한 농민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 일부는 건물 앞 도로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반대로 세계자연기금(WWF) 등 환경단체들은 EU의 환경 정책 후퇴를 비판하고 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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