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 유부남' 된 한류왕자 김수현..."코미디 확실하게" 주문에 돌변했다

입력
2024.04.09 04:30
수정
2024.04.09 08:28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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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눈물의 여왕' 주인공 김수현
tvN 역대 흥행 드라마 톱4 견인
"귀여운 건 내추럴 본" 궁상 아이디어 쏟아내
소년 얼굴+중후한 목소리='캐릭터 이중성 부각'
"연기 부족"에 울고 '별그대' 흥행 후 숨어지내다
"너 많이 밝아졌구나?" 군 제대 후 여유 찾아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백현우(김수현)가 울며 주정하고 있다. "귀여운 건 내추럴 본"이란 대사 등은 대본에 없는 그의 애드리브였다. tvN 방송 캡처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백현우(김수현)가 울며 주정하고 있다. "귀여운 건 내추럴 본"이란 대사 등은 대본에 없는 그의 애드리브였다. tvN 방송 캡처

"왜 막 귀엽고 홍해인(김지원) 설레게 만들어 내 팔자를 꼬았지? 안 귀여웠으면 이런 결혼도 안 했을 텐데."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배우 김수현(36)이 맡은 남주인공 백현우는 친구 앞에서 이렇게 주정하며 힘든 결혼 생활을 한탄한다. "용두리 배나무집 막내아들 귀여운 건 그냥 내추럴 본(Natural born·타고난 특성)"이라는 현우의 눈물 섞인 주접이 이어지자 친구는 술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방송 후 화제가 된 이 장면은 김수현의 애드리브로 촬영됐다. 여주인공 홍해인을 맡은 김지원이 드라마 '쌈, 마이웨이'(2017)에서 "나 그냥 예쁘게 태어난 건데"라며 애교를 부린 장면을 김수현이 깜짝 패러디한 것. 김수현 역시 두 손을 양 겨드랑이에 구겨 넣으며 애교를 부린다. "김수현이 촬영 전 (이 모습이 어떻게 잡힐까) 카메라 앵글까지 확인"(김희원 '눈물의 여왕'PD)하고 야심 차게 준비한 코믹 연기다.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김수현이 힘든 결혼 생활을 친구에게 털어놓으며 울고 있다. tvN 제공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김수현이 힘든 결혼 생활을 친구에게 털어놓으며 울고 있다. tvN 제공


"귀여움? 내추럴 본" 김수현 애드리브였다

'눈물의 여왕'에서 김수현은 온갖 궁상맞은 아이디어를 내가며 캐릭터의 처량함을 부각한다. 재벌가 사위로 처가살이하며 확 쪼그라든 자존감에 친구 앞에서 엉엉 울기도 하고,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나만 믿으라"던 재벌 3세 아내를 원망하며 콧물도 훌쩍인다. 그의 대표작인 '해를 품은 달'(2012)과 '별에서 온 그대'(2013) 등에서 반듯하고 듬직하게만 나왔던 것과 비교하면 180도 다른 모습이다. '한류 왕자'의 짠내 나는 유부남 연기라니. 그의 이런 변화는 '눈물의 여왕' 대본을 쓴 박지은 작가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이번엔 (김)수현씨가 코미디를 확실하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주문이었다.

김수현의 '짠내 연기 열전'을 연료 삼아 '눈물의 여왕'은 7일 시청률이 18.9%까지 치솟았다. 이는 '사랑의 불시착'(21.7%·2019) '도깨비'(20.5%·2016) '응답하라 1988'(19.5%·2015)에 이어 역대 tvN 드라마 중 네 번째로 높은 흥행 성적이다.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백현우(김수현)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내 홍해인(김지원)을 안고 있다. tvN 제공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백현우(김수현)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내 홍해인(김지원)을 안고 있다. tvN 제공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퀸즈그룹 법률팀장인 백현우(김수현). tvN 제공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퀸즈그룹 법률팀장인 백현우(김수현). tvN 제공


"숨쉬기도 어려워" '도둑들' 후 변화

"김수현의 연기 차력쇼다"(@Hye_li****, mybab****, alans*****).

'눈물의 여왕'이 끝나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이런 반응이 줄줄이 올라온다. 김수현이 코믹 연기로 중무장해 남편으로는 어수룩한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내 김지원을 향한 순애보와 변호사로서의 치밀함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어서다. "로맨틱 코미디에 치중해 온 여느 청춘스타들과 달리 사극('해를 품은 달')부터 스릴러('어느 날')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연기의 폭을 넓혀온 김수현은 코믹과 진지함을 자연스럽게 오가며 극에 몰입"(공희정 드라마평론가)을 이끈다. 그는 소년의 얼굴에 중년 남성의 중후한 목소리를 지녔다. "극과 극의 매력으로 김수현은 캐릭터의 이중성을 풍성하게 살린다"(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김수현이 영화 '도둑들'(2012)에서 연기한 잠파노. 쇼박스 제공

김수현이 영화 '도둑들'(2012)에서 연기한 잠파노. 쇼박스 제공

"전환권 조항, 재검토해 주십시오." 데뷔 전 극단 생활로 연기와 발성의 바탕을 닦은 김수현은 '눈물의 여왕'에서 변호사로서 법률 용어를 또박또박 읽으며 신뢰감을 준다. "철저한 대본 분석을 바탕으로 대사를 어디서 어떻게 끊어 읽어야 하는지를 알고 연기"('해를 품은 달' 김응수)하는 데서 나오는 전달력이다.

김수현은 김갑수, 이미숙, 나영희 등 연기 경력 40년을 훌쩍 넘어선 선배들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고 기싸움을 벌인다. "영화 '도둑들'(2012) 촬영 때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 등 쟁쟁한 선배들 틈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주눅이 들어 최동훈 감독이 '우리 막내 (연기) 끄집어 나올 수 있게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고 털어놨던 그가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연기 구력이 붙어 생긴 변화다. 2007년 시트콤 '김치 치즈 스마일'로 데뷔한 그는 올해 연기 활동 18년 차다.

김수현은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에서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보낸 공작원을 연기했다. 쇼박스 제공

김수현은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에서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보낸 공작원을 연기했다. 쇼박스 제공


드라마 '어느 날' 속 김수현의 모습. 쿠팡플레이 제공

드라마 '어느 날' 속 김수현의 모습. 쿠팡플레이 제공


스스로 망가지는 촬영장 '흥 부자'

어려서 워낙 숫기가 없어 어머니에게 "웅변 학원이라도 다녀볼래?"란 걱정을 샀던 김수현은 '눈물의 여왕' 촬영장에서 '흥 부자'로 통한다. "다 내려놓고 '으허허' 하고 웃으며 주변을 편안하게 해 준다"(윤은성 역의 박성훈)는 게 동료 배우들의 말. '눈물의 여왕' 제작 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촬영 도중 난데없이 뮤지컬 '지킬 앤드 하이드' 속 대사를 하며 현장에 웃음을 주기도 한다. '별에서 온 그대'에 함께 출연한 나영희는 지난 2월 촬영이 끝난 뒤 회식 자리에서 "너 굉장히 밝아졌구나?"란 말을 할 정도로 김수현의 변신에 놀랐다고 한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속 김수현. MBC 제공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속 김수현. MBC 제공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속 김수현. SBS 제공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속 김수현. SBS 제공


"중년이 기대되는 배우"

2008년 김수현은 드라마 '정글피쉬' 예고 영상을 보고 자신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제작발표회에서 울었다. 재수생 시절 소속도 아닌 대학 연극 동아리를 찾아가 연기를 배우고 4년 동안 연극영화과 진학을 준비할 정도로 그는 연기에 절박했다. '별에서 온 그대' 후 한류 스타로 급부상한 뒤엔 되레 숨어 지냈다. 사건, 사고에 휘말려 구설에 오르면 그간 일군 노력이 모두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부담감이 그를 옥좼다. 그렇게 노심초사하다 어떻게 여유를 찾았을까. "그간 아무도 안 미는데 자꾸 등 떠밀리는 기분으로 '숨어야 되는 사람'처럼 살았다"는 그는 2017년 입대한 뒤 "필요 없는 고민들이 가시면서" 조바심을 떨쳤다. 그는 차기작으로 블랙 코미디 장르의 드라마 '넉 오프' 출연을 검토하고 있다. "연기력 뒷받침이 되지 않아 군 제대 후 성인 연기 혹은 생활 연기에서 위기를 맞는 청춘스타들과 달리 중년이 기대되는 배우"('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최문석 PD)로 꼽히는 김수현은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늙어갈까.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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