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무 만들어 먹는 일본 배우와 세계관 공유한다"는 '기생수' 연상호 감독

입력
2024.04.09 17:1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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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제치고 이변 쓴 연상호 감독
'기생수: 더 그레이'로 넷플릭스 세계 1위


드라마 '기생수: 더 그레이'를 연출한 연상호(왼쪽) 감독과 이 작품에 깜짝 등장한 일본 배우 스다 마사키. 넷플릭스 등 제공

드라마 '기생수: 더 그레이'를 연출한 연상호(왼쪽) 감독과 이 작품에 깜짝 등장한 일본 배우 스다 마사키. 넷플릭스 등 제공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더니 갑자기 두 팔을 머리 위에서 휘저었다. 공연장에서 펼쳐진 무용수의 몸짓이 아니다. 넷플릭스 새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이하 '더 그레이') 촬영장. 연상호(46) 감독은 외계의 기생 생물이 촉수로 상대를 위협하는 모습을 매번 직접 연기했다. 촬영은 연 감독이 시연하면 그걸 보고 배우들이 따라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기생 생물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배우들이 난감해했기 때문이다. 일본 유명 만화 '기생수'를 원작으로 한 '더 그레이'는 우주에서 지구로 날아온 기생 생물이 인간의 몸을 빼앗는 과정을 그린다. 좀비를 능가하는 괴상하고 전위적인 몸짓은 기본. 연 감독은 괴성을 내가며 기생 생물을 연기했다. 쑥스럽진 않았을까. "저 그런 거(상상 속 생명체 연기하는 것) 좋아해요." 9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가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드라마 '기생수: 더 그레이'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기생수: 더 그레이'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더 그레이'는 지난 5일 공개된 뒤 6일부터 사흘 연속 영어·비영어권 통틀어 넷플릭스 시리즈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3주 전 공개돼 세계적 주목을 받은 미국 공상과학 드라마 '삼체'를 정상에서 밀어내고 일군 이변이다. 만화 속 기생 생물이 생생하게 실사화됐고, 인간을 숙주로 삼는 기생 생물들과 이를 막아내려는 사람들의 대립이 긴장감 있게 그려졌다는 평이다. 연 감독은 원작을 비틀었다. 기생 생물과 공생하는 평범한 고등학생 남자 주인공을 가정 폭력에 노출된 여성으로 바꿨다. 인간의 몸을 빼앗은 기생 생물들이 사이비 종교로 조직화하는 내용도 새로 넣었다. 그는 "원작에서 다루는 사건이 한국에서 동시에 벌어졌다고 가정하고 만든 것"이라며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어떤 조직을 만드는가'에 집중해 종교 등 여러 단체를 부각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기생수: 더 그레이'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9일 "시즌2에 대한 구상은 이미 했다"며 "다만 제작은 넷플릭스의 결정"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기생수: 더 그레이'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9일 "시즌2에 대한 구상은 이미 했다"며 "다만 제작은 넷플릭스의 결정"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넷플릭스 제공

원작의 파생작 콘셉트로 '더 그레이'가 만들어지면서 말미엔 만화 주인공(이즈미 신이치)이 깜짝 등장한다. 영화 '아, 황야'(2018)로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은 청춘 스타 스다 마사키가 그 역을 맡았다. 한국으로 건너 온 이즈미는 기생 생물 전담팀 팀장 최준경(이정현)을 찾아와 손을 내민다. 한국과 일본의 '기생수' 관련 공생의 세계관이 만나는 것이다. 연 감독은 "모든 생물이 기생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에 중점을 뒀다"고 연출 의도를 들려줬다. 한국 감독과 일본 배우는 떡볶이와 치킨무로 교류했다. 연 감독은 "스다와 '생활맥주' 가게에서 떡볶이와 치킨을 안주로 맥주를 마시며 작품 얘기 등을 했다"며 "그와 (그의) 아내가 치킨무를 좋아해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드라마 '지옥' 시즌2 대본 리딩 현장 모습. 넷플릭스 영상 캡처

드라마 '지옥' 시즌2 대본 리딩 현장 모습. 넷플릭스 영상 캡처

연 감독은 올 하반기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2' 공개도 앞두고 있다. 올해 공개한 작품은 '선산'을 포함해 벌써 두 편. 다작 비결은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규칙적 생활이다. 서울 마포구 소재 작업실에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한다. "사무실에서 괴로워하며 (이야기 구상하느라) 뱅글뱅글 도는 게 일"이란다. "만성 피로"에 시달린다는 그는 피겨 조립 등을 하며 한숨을 돌린다. 영화 '부산행'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했지만 '반도' '정이' 등의 흥행에 잇따라 실패하며 '강제 은퇴 위기'도 겪었다.

"제가 대중 친화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그래서 늘 애를 먹고 '언젠간 대중성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만들고 싶다'는 꿈도 꿔요. 하지만, (대중 안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계속 투쟁해야죠, 하하하."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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