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세 현대미술가 씨킴 김창일... 그는 왜 무지개를 좇는가

입력
2024.04.23 04:30
수정
2024.04.23 17:28

세계 100대 컬렉터·아라리오 인 스페이스 설립자
천안·서울·상해 갤러리 운영 신진 작가 발굴·후원
"어릴 적 무지개 잔상이 사라지지 않아 병적 고통
"49세부터 갑자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 "평안 찾아"
"'타임지'는 하나의 풍경화, 2030년 커버스토리 꿈"

세계 100대 컬렉터이자 아라리오 인 스페이스 설립자인 씨킴 김창일 작가가 지난달 20일 아라리오 천안 갤러리에서 자신의 17번째 개인전 '레인보우'에 내놓은 작품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안=윤형권기자

세계 100대 컬렉터이자 아라리오 인 스페이스 설립자인 씨킴 김창일 작가가 지난달 20일 아라리오 천안 갤러리에서 자신의 17번째 개인전 '레인보우'에 내놓은 작품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안=윤형권기자

어릴 적 어느 여름 날, 서울 남산에서 마주했던 일곱 색깔 무지개. 그 선명한 기억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 또렷해졌다. 거대한 암석을 뚫고 솟아오르는 용암 분수처럼, 무지개 잔상은 강렬한 욕구로 분출했다. 단단한 캔버스에 물감을 쏟아 붇고, 붓질을 하게 했다. 붓은 응축된 에너지를 발산하려는 본능대로 춤을 추었다. 붓질이 멈추었을 때 비로소 그 앞에 무지개가 나타났다.

해외 미술계에서 '씨킴(CI KIM)'으로 널리 알려진 김창일(73)화백은 그렇게 운명적으로 미술과 만났다. 49세 되던 해였다.


그는 ‘세월을 거꾸로 먹는’ 예술인으로 이름 나 있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3월 아라리오 천안 갤러리에서 개인전 '레인보우'를 열었다. 2003년 영국 런던 유니온갤러리에서 'MY SELF : CI KIM'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연 이래 17번째 개인전이다.

그는 작품 활동을 탐험에 빗댔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모험을 즐기는 과정”이라며 “살아 있는 한 모험을 멈출 수는 없다”고 했다. 추구하는 작품 세계는 그에게 붓을 쥐어준 ‘꿈과 무지개’로 귀착된다.

“왜 무지개는 빨주노초파남보, 색상의 서열이 바뀌지 않는 걸까. 이 화두가 내 삶의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내 안의 무지개는 꿈과 희망이고, 나를 존재하게 하는 에너지이자 예술을 지속하는 원천이지요”

김창일 작가가 "2030년 타임지 커버스토리 주인공이 되고 싶은 꿈을 꾸고 있다"며 자신이 그린 타임지 표지 모델(자화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안=윤형권 기자

김창일 작가가 "2030년 타임지 커버스토리 주인공이 되고 싶은 꿈을 꾸고 있다"며 자신이 그린 타임지 표지 모델(자화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안=윤형권 기자

씨킴은 개인전을 열어도 작품을 팔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소장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의 초기 작품 몇 점이 대림미술관과 독일 라이프치히 MdbK미술관에 소장돼 있을 뿐이다. 이 작품들도 씨킴이 작품 활동을 시작할 즈음의 초기작들이다. 때문에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은 그가 소유한 아라리오갤러리나 아라리오뮤지엄을 찾거나 개인전이 열리는 시기에 맞춰 직접 마주하는 것 뿐이다. 그는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이 그림까지 그려서 판다고 할까 봐 미술시장에 내놓질 않는다”고 미소 지었다.

씨킴은 “예술은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자수성가로 부를 쌓은 그가 미술품 수집가이자 갤러리 운영자로 나선 이유다. 그가 갤러리스트로서 첫 출발을 한 아리아오 천안 갤러리 옆 신세계백화점 광장에는 키스 해링, 데미언 허스트, 수보드 굽타 등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설치돼 있다. 거장들의 작품을 갤러리를 찾은 많은 사람들에게 무료로 선사한 것이다.

‘공간사옥’ 매입 일화에서도 그의 예술 철학을 읽을 수 있다. 2013년 건축가 김수근의 공간사옥이 경매에서 유찰됐다는 신문 기사를 접한 씨킴은 곧바로 공간사옥 측에 연락해 건물을 인수했다. 공간사옥 매입을 결심하기까지는 9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공간사옥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 작품이자 한국 건축의 정체성을 이어주는 공간미학이라고 생각해요. 경매 유찰 소식에, 미술관으로 꾸며서 시민들에게 힐링 공간으로 제공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지요"

그는 대기업도 눈독 들이던 공간사옥을 즉시 사들인 뒤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로 단장해 시민 품에 선사했다. 이런 그가 가장 존경하는 분은 돌아가신 어머니다. 그는 “한국 전쟁 때 북한에서 피난 온 어머니는 식사 때 음식을 남기면 혼내셨다. 밥을 먹은 후에는 그릇에 물을 부어서 음식 찌꺼기가 그릇에 달라 붙지 않도록 주의를 주셨다. 설거지 하는 사람을 생각해서다. 이런 어머니의 훈계가 사업을 할 때나 그림을 그릴 때 영향을 주었다"고 회상했다.

김창일 작가가 아라리오 천안 갤러리에서 자신의 예술 철학을 들려주고 있다. 천안=윤형권 기자

김창일 작가가 아라리오 천안 갤러리에서 자신의 예술 철학을 들려주고 있다. 천안=윤형권 기자

아트넷 선정 ‘세계 100대 컬렉터’이기도 한 씨킴은 해외에서의 보폭을 한층 넓히고 있다. 아시아 시장의 세계 시장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2014년 중국 상하이에 갤러리를 열었다. 그는 “실력있는 아시아 작가의 80~90%가 상하이에서 활동하고 있다. 세계 미술의 중심인 뉴욕에 진출하려면 우선 상하이에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상하이 갤러리를 서울과 천안 갤러리와 연계해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등용문으로 키워갈 참이다. 미술을 향한 그의 열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I'm still hungry, I want to eat a dream’(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꿈을 먹고 싶다)

씨킴이 2030년 TIME지에 자신의 인터뷰 기사가 실릴 것을 상상하며 스스로 뽑아 놓은 제목이다.

윤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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