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검찰 진술분석관 피해자 면담 영상은 증거로 못써"

입력
2024.04.2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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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부모·지인에 성적 학대 아동
검사 의뢰해 진술분석관 면담 녹화
대법 "증거능력 인정 영상물 아냐"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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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 소속 진술분석관(검찰의 의뢰를 받아 피해자 진술 신빙성을 판단하는 전문가)이 피해자와 면담한 내용을 녹화한 영상은 재판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정에서 직접 진술하지 않은 증언의 증거능력은 엄격히 제한돼야 한다는 취지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아동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을 지난달 28일 확정했다. A씨 지인 두 명은 각각 징역 7년과 징역 3년 6개월 형이 확정됐지만, A씨의 남편이자 피해자의 계부 B씨는 무죄를 확정 받았다.

이들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초등학생인 A씨의 친딸을 성적으로 학대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피해 아동에게 의붓동생을 돌보게 한 후 그 앞에서 지인과 수차례 성관계하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딸이 분유를 타왔다는 이유로 벌을 서게 하며 흉기로 위협까지 한 것으로 조사됐다.

3년간 이어진 범행은 아이가 학교에 피해 사실을 알리면서 드러났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사는 대검찰청 소속 진술분석관에게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분석을 의뢰했다. 성폭력처벌법상 아동이 피해자인 경우 진술 내용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 조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진술분석관은 약 6시간에 걸쳐 피해자를 면담한 뒤 이를 녹화했고, 이 영상은 증거로 법정에 제출됐다. 재판에선 이 영상을 두고 증거 채택 논란이 벌어졌다. 형사소송에서 진술 증거는 원칙적으로 법정에서 직접 발언한 것만 인정되고, 그렇지 않은 증거는 극히 예외적인 조건에서만 효력을 갖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수사과정 외의 상황에서 나온 진술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313조 중 1항을 근거로 해당 영상이 증거로 채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조항은 피해자 진술이 담긴 영상에 대해 당사자가 법원에서 "내용이 맞다"고 동의하면, 이를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1∙2심은 이 영상의 증거 능력을 부정했다. 진술분석관이 수사관은 아닐지라도, 수사기관의 관여 아래 촬영된 자료인 이상 313조 적용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즉, 수사단계의 진술에 대한 조항인 312조가 적용돼야 하는데, 이 경우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전문증거는 영상이 아닌 '조서' 형식이어야 한다.

대법원도 원심이 옳다고 보고 다른 증거들로 범죄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확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진술분석관의 면담 녹화물은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없다는 최초의 판시"라면서 "수사기관에서는 비소속 전문가를 통해 진술 신빙성을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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