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갈등' 완주 석산 개발에 고통 받는 장애인과 주민들

입력
2024.04.29 18:30
수정
2024.05.01 11:48

매일 반복되는 발파음·분진에 '발작'
소음 측정기 설치해 달라 요청에
완주군 "기준치 안 넘고 권한 없다"

지난해 12월 전북 완주군 고산면 주민이 인근 석산의 토석 채취 현장을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국제재활원 제공

지난해 12월 전북 완주군 고산면 주민이 인근 석산의 토석 채취 현장을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국제재활원 제공

"하루에 3~4번씩 천둥소리가 나면서 전쟁터를 방불케 해요. 중증 발달장애인들은 발작을 일으키고 무서워합니다."

전북 완주군 고산면 석산 개발 공사 현장 인근에 있는 장애인 거주시설 국제재활원 최준식 원장은 최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한숨을 내쉬며 토로했다. 특히 이곳 주변에는 재활원뿐만 아니라 심리적 안정이 필요한 특수학교 등이 있는데도 수십 년간 토석 채취가 이어져 발파 소음과 분진 등 오염물질로 인해 고통이 극심한 실정이다. 일부 주민들은 완주군에 소음 측정기 설치 등 피해 저감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불발되면서 여전히 갈등을 빚고 있다.

29일 완주군 등에 따르면 고산면 삼기리 부근 석산 토석 채취 공사는 지난 1990년부터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석산 공사 현장 앞 1㎞도 채 안되는 곳에는 장애인 거주시설인 국제재활원과 새힘원, 특수학교인 푸른학교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국제재활원 시설에는 42명의 뇌병변·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장애인이, 새힘원에는 37명의 중증 중복 장애인이 기거하고 있다. 더욱이 푸른학교엔 장애인 학생 110여 명이 매일 수업을 듣고 있다. 최 원장은 "석산을 캘 때마다 산골 바람을 타고 분진과 먼지가 건물 내부까지 들어온다"며 "밖에서 빨래를 말릴 수 없어 실내에 온실을 만들어 놓았을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급기야 재활원 측과 일주 주민들은 소음 때문에 힘들다며 완주군에 측정기 설치를 요청했다. 그러나 완주군은 소음이 법적 기준치를 넘지 않고 설치 권한이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앞서 전북보건환경연구원이 2022년 국제재활원에서 발파 소음을 측정한 결과 향후 최대 사용 화약량인 400㎏을 발파할 시 소음은 65.7dB, 진동은 48dB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장 기준(소음 65dB 이하, 진동 75dB 이하)을 적용하면 소음은 기준치를 넘는다. 하지만 업체 측은 공사장 기준치(소음 75dB)를 적용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완주군은 이를 받아들였다.

재활원과 일부 주민들로 구성된 고산 석산개발반대대책위원회는 군에서 제대로 된 관리 감독 없이 2028년까지 5년간 사업 연장을 허가했다며 2023년 4월 토석 채취 허가 연장 취소 소송과 감사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9월 같은 내용으로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이와 함께 2010년 작성된 주민과 업체 간 합의서가 위·변조됐다는 의혹 제기와 장애인 시설에 대해 소음·진동만 측정하고 비산먼지는 측정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은 감사 청구에 대해서는 △완주군 민원조정위원회가 합의서 외에 산지관리법 등에 따른 별도 허가 요건을 검토해 사업 기간을 연장한 점 △대기환경보전법상 단체장은 비산먼지 억제 시설 설치·조치 이행 여부를 확인하는 조항은 있으나 측정을 의무화하는 내용은 없는 점 등을 들어 각각 기각했다.

사정이 이러하자 국제재활원·새힘원 측과 일부 주민들은 "군은 주민 안전보다 업체 눈치보기에 급급하다"며 비난하고 나섰다. 유재현 새힘원 원장은 "석산 사업 허가권은 완주군에 있다"며 "업체 측이 사업 연장 조건으로 약속한 환경 피해 저감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장애인과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데도 군에서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에 대해 완주군 관계자는 "위법 사항이 없고 규정에 따라 사업 허가를 연장한 것"이라며 "소음 측정 결과 기준치를 넘지 않았는데 예산을 들여 군에서 소음 측정 장비를 살 수는 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업체 측에서 장비를 샀으나, 일부 주민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을 듣고 설치하지 않기로 한 걸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혜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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