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은밀한 이야기

입력
2024.03.28 04:30
27면

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귀걸이의 침이 들어가는, 귓바퀴 아래쪽 도톰한 살이 귓불이다. 충청도에 가면 귀불알, 구이불알이라고 말하는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다.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귀걸이의 침이 들어가는, 귓바퀴 아래쪽 도톰한 살이 귓불이다. 충청도에 가면 귀불알, 구이불알이라고 말하는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다.


북한 말은 언제 들어도 정겹다. 순우리말이라 절로 머릿속에 그려지기 때문이다. 덧머리(가발) 살결물(스킨) 뜨게부부(사실혼) 몸틀(마네킹) 몸까기(다이어트) 꾹돈(뇌물)…. 꾹돈은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남들 몰래 돈을 꾹 찔러주는 모습이 그려진다. 부정적인 뜻의 낱말이지만 너무나 그럴싸해 빙그레 웃게 된다.

“북한에선 전구는 불알, 형광등은 긴 불알, 샹들리에는 떼 불알이라고 한다”는 말이 돈 적이 있다. 정말일까. 북한에서 대학교수를 지내다 넘어온 박노평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불알, 날틀(비행기) 같은 단어는 김일성이 말 다듬기를 할 때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진 말”이라며 “북한에서도 전구는 전구 또는 전등알이라 일컫는다”고 설명했다. '불알 이야기'는 그저 우스개였던 셈이다.

기왕 꺼낸 김에 불알 이야기를 할까 한다. 불알은 남자한테만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여자도 불알을 가지고 있다. 이상한 상상을 하거나 놀랄 일은 아니다. 귓바퀴의 아래쪽에 붙어 있는 도톰한 살이 바로 그것이다. 귀걸이를 하는 이 부위의 이름은 귓불이다. 일상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귓볼’과 ‘귓방울’은 없는 말이다.

귓불은 ‘귀+불’의 형태다. 불은 고어에선 ‘부+ㅀ’로 쓰였다. 불알의 줄임말로, 음낭(陰囊)의 순우리말이다. 충청도 강원도 경기도 등지에 가면 지금도 어르신들은 귓불을 ‘귀불알’ ‘구이불알’이라고 말한다. 이제 여자에게도 불알이, 그것도 두 개가 있다는 데 의심할 사람은 없겠다.

귀 안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봐야겠다. 귓구멍 안에 낀 때는 귀지다. 그리고 그 귀지를 파내는 도구는 귀이개다. 흔히 말하는 ‘귀쏘시개, 귀쑤시개, 귀파개, 귀후비개, 귀후지개’는 모두 표준말이 아니다. 귀지를 귓밥으로 잘못 알고 있는 이도 많다. 귓밥은 귓불과 같은 말이다.

내친김에 은밀한 곳에 있는 목젖도 짚고 가는 게 좋겠다. 입을 크게 벌리고 입속을 들여다보시라. 목구멍 끝부분에 둥그스름한 살이 보일 게다. 뜨거운 물을 마시면 뜨끔대는 그것. 바로 목젖이다. 남자들 목 한가운데 툭 튀어나온 곳은 목젖이 아니라 울대뼈다. 울대는 목소리가 울리는 곳으로,성대(聲帶)의 순우리말이다.

새끼손톱만 한 파란빛의 ‘개불알꽃’. 꽃이 개의 음낭처럼 생겼다고 일본인 학자가 이름 붙였다는데 도무지 맘에 들지 않는다. 야생화 동호인들은 '봄까치꽃'이라 부른다. 봄날의 까치처럼 이른 봄에 피어 봄을 알리는 꽃. 뜻도 소리도 예쁘다. 개들도 좋아하겠다.



노경아 교열팀장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