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보내주신 고향 산나물

입력
2024.05.01 04:30
27면

식물

편집자주

사람에게 따뜻함을 주는 반려동물부터 지구의 생물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지식과 정보를 소개한다.

어머니가 작년까지 보내 주시던 음나무순. 음두릅. ⓒ서효원

어머니가 작년까지 보내 주시던 음나무순. 음두릅. ⓒ서효원

매년 봄이 되면 고향에 계신 부모님으로부터 봄나물 꾸러미가 온다. 온갖 종류의 햇순 나물과 취나물을 라면 상자 하나 가득 채울 정도의 양으로 많이 보내주신다. 택배 상자에 담겨온 푸릇한 고향의 봄 내음과 억세어진 부분을 잘 다듬어 꾸려 보내신 정성에 코끝이 시큰해진다. 팔순의 어머니는 산에 오르시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매년 산나물을 보내주시는 걸까?

고향인 강원도 양양은 내를 바라보며 산을 등지게 배치해 지은 시골집이 많다. 그런 집들엔 대부분 뒷산과 제법 너른 경사진 땅으로 이어진 공간이 있는데 영동지방에서는 '뒌'이라고 부른다. 뒤꼍을 달리 부르는 뒤안을 짧게 발음하며 생긴 방언인 듯하다. 집의 뒤쪽이라 그늘져 있을 것 같지만 대개 남쪽 혹은 동남쪽 사면이라 볕이 잘 들고, 부엌과 가까운 쪽에 장독대와 작게 파진 우물이 자리하고 있다. 뒷산과는 주로 대나무로 경계를 짓고, 원추리나 도라지, 더덕같이 뿌리가 깊은 식물과 키 작은 과일나무를 많이 심는다. 산사태를 막고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얻을 수 있는 지혜로운 조경인 셈이다. 심긴 식물들은 잡초와 함께 자라지만 양지바른 곳이라 조금만 관리해 주어도 우거지며 잘 자란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두릅. ⓒ서효원

어머니가 보내주신 두릅. ⓒ서효원

회사의 첫 근무지가 고향과 멀지 않았던 20년 전쯤, 그곳에 자두와 사과나무를 심은 적이 있다. 나무들이 제법 자라 과일이 막 열리기 시작할 즈음의 어느 해에 모두 베어졌다. 살충제를 치지 않으면 과일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벌레가 많이 끼는 것을 보시고 아버지께서 결단하신 것이다. 장독대와 우물이 있는 집 안에 농약을 치는 것이 마땅치 않으셨던 모양이다.

고향 집 뒌에는 누가 언제 심었는지 모르는 도라지와 더덕, 참취와 잔대가 많이 자란다. 요즘엔 두릅나무와 음나무가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부모님께서 이웃에 다니며 얻어 심은 것들이 잘 퍼져서 자리 잡은 것이다. 두릅나무는 새순을 따면 아래쪽에서 가지를 더 많이 낸다. 벌레가 적은 봄에 새순을 먹는 것이고, 농약을 칠 필요가 없으니 잘하셨다는 생각이다.

올해도 며칠 전 어머니가 보내신 봄나물 택배가 도착했다. 작년보다 훨씬 적어진 양의 두릅이었다. 잘 받았다고 전화를 드리니, 이젠 힘들고 어지러워서 음나무 가지를 내리지 못해 '음두릅'은 못 보냈다며 아쉬워하신다. 쌉쌀한 음두릅을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통화하는 내내 내년부터는 두릅도 안 보내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나는 차마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서효원 식물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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